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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서적

(요약) 부의 골든타임 (2부)연준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위기

2부 세계경제를 떠받치는 아틀라스, 연준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위기

 


미국에서 중앙은행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계속 있었지만 미국의 은행자본들은 자신들의 영향력 약화를 우려해 이를 방해했고 금융 위기 마다 스스로 중앙은행 역할을 수행했다. 

1910년 미국 조지아주 지킬섬 리조트에서 '오리 사냥'으로 위장한 연방준비제도 설립 회의가 열리고, 1913년12월23일 법안이 통과돼 1914년 연준이 출범하게 되었다. 12개 연방준비은행을 총괄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워싱턴 D.C.에 두기로 하고, JP모건과 내셔널시티뱅크 등 민간은행 출자로 연준이 설립되었다. 민간은행들은 연 6% 배당금을 받아 갔다. 

연준은 월가 영향권 안에 있어서 1929년 대공황 시기에 뚜렷한 통화정책 목표를 세우지 못했고, 잘못된 정책으로 위기를 확대했다는 비판도 있다. 1920년대 후반 버블 조짐에도 팽창적 통화정책으로 금융회사들이 투자에 몰두하고 주가는 폭등을 거듭했으며, 1929년2월에 뒤늦게 긴축에 나선 데 이어 금태환 요구로 금 유출이 가속화되자 금본위제를 포기할 경우 극심한 인플레이션 발생을 우려(금융회사들의 채권가치 급락)해 1932년10월부터 금리를 잇따라 인상해 불황을 가속화했다.

William McChesney Martin Jr. is sworn in as Chairman of the Federal Reserve Board of Governors (Photo: Associated Press)


연준의 위상 강화 계기를 만든 인물은 1951년 9대 연준 의장에 취임해 19년간 재임한 맥체스니 마틴 주니어였다. 그는 1965년 베트남전쟁 여파로 물가가 오르기 시작하자 압력에 굴하지 않고 금리를 인상했다. 

1979년 12대 연준 의장인 폴 볼커는 물가를 잡기 위해 취임 당시 연 11.2%였던 기준 금리를 석 달만에 14%로 올리고, 1981년 물가가 더 오르자 기준금리를 20%대까지 인상했다. 그 결과 1983년 물가 상승률은 3.2%로 떨어졌다. 레이건 정부는 금융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앨런 그린스펀을 연준 의장으로 임명하고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구분해 놓았던 글래스-스티걸법을 폐지했는데, 이는 상업은행의 위험한 투자를 조장해 자산시장 버블을 만든 원인이 되었다. 

볼커가 끌어올린 연준의 위상은 앨런 그린스펀으로 이어지면서 지위가 더욱 공고해 졌다. 그린스펀은 정치권과 타협하지 않고 소신있는 금융정책을 펼쳐서 연준이 창설 이래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2000년 닷컴 버블 이후 위기를 넘길 때마다 금리인하, 유동성 증가로 부채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고, 2007년 1월 뒤늦게 기준금리를 올려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했다. 

그린스펀의 후임인 벤 버냉키는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양적완화 정책으로 대응해 금융시장을 빠르게 안정시켰다. 그러나 양적완화(국채 매입)로 풀린 돈은 대부분 은행에 머물렀고 자산 가격만 급등시켜 빈부격차와 저성장 고착화라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연준의 양적완화는 국채 값을 올려 금융회사들이 고평가된 국채를 팔고 저평가된 주식을 사도록 이끌었으며, 자산 가격이 급등에 따른 순자산효과로 소비증가를 유도했다. 

코로나19 이후 연준은 '다른 차원(other dimensions)'에서 대응했는데, 이는 사실상 제로 금리, 무제한 양적완화 상황에서 무제한적 발권력으로 직접 돈을 뿌리는 것이었다. 양적완화 규모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비교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엄청났다.

버블 연장전, 연준의 전략은 유효한가


체크포인트 1 연준은 계속해서 자산 가격을 떠받칠 수 있을까

2008년 양적완화 도입 이후 더 이상 신중한 금리 정책을 고집할 이유가 없어졌다. 양적완화는 제로금리와 달리 사들일 수 있는 채권이 남아 있는 한 원론적으로 계속 집행이 가능하다. 실물경제가 치솟아 오른 주가에 걸맞은 수준으로 회복되기 전까지 연준은 끝까지 양적.질적완화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체크포인트 2 이번에도 실물이 회복될 때까지 양적완화를 할 수 있을까

연준은 2008년 이후 실제 GDP가 잠재 GDP에 가까워진, 실물경제가 완전히 회복된 2014년에야 양적완화를 중단했다. 양적완화의 전제조건인 시중의 국채나 모기지 채권은 코로나19 재정지출로 충분한 상황이며, 양적완화를 먼저한 일본의 GDP 대비 양적완화 비중과 비교할 때 아직 2배 이상 양적완화를 확대할 여력이 남아 있다. 또 다른 제약조건인 달러화 가치 하락은 기축통화 지위를 흔들어 현재와 같은 천문학적인 양적완화를 지속하기 힘들어진다. 코로나19 위협이 약화되면 재정 지출을 줄이고 본격적인 증세 논의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인플레이션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발전할 우려가 있어 또 다른 제약 요인이다. 과도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양적완화가 쉽지 않고, 실물경제가 미처 회복되기 전에 연준의 양적완화 불가 상황을 시장이 알아차리게 되면 순식간에 공포가 번질 것이다. 

체크포인트 3 무제한 양적완화도 통하지 않으면 제3의 카드는 있을까

대표적인 카드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과 수익률 곡선 통제이다. 마이너스 금리는 유럽처럼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올릴 수 있지만 금융회사들의 수익성 악화로 대규모 부실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특히 미국은 머니마켓펀드 시장이 4조달러에 달해 마이너스 금리가 되면 머니마켓펀드로부터 자금 이탈을 초래하고 여기서 자금을 조달하던 기업이나 금융회사가 자금난에 봉착할 위험이 커진다. 수익률 곡선 통제는 연준이 스스로 국채를 사고 팔아 만기마다 일정 수준으로 국채 금리를 고정시킨다는 뜻이다. 이미 양적완화로 국채 금리를 통제하는 상황에서 수익률 곡선 통제의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